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달빛 아래의 계약

by jjj-80000 2025. 5. 18.

 

“이 계약을 맺는 순간, 당신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겁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달이 유난히 밝았던 밤, 지민은 낡은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저택은 마치 수십 년을 잠들어 있던 것처럼 고요했고, 안에서는 한 줄기의 촛불만이 깜박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가 나왔다.

“드디어 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그의 외모. 창백한 피부, 깊은 눈동자,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그는 ‘달의 계약자’, 인간의 시간과 감정을 사들이는 존재였다.

지민은 사랑하는 동생의 생명을 되찾기 위해 그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대가로 지민은 ‘시간’을 빼앗겼다. 하루는 단 2시간만 살아 있는 채로, 나머지는 그림자 속에서 멈춰 있어야 했다.

“그럼, 이제 당신은 나의 그림자입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지만, 감정은 남아 있었다. 계약 이후 지민은 매일 밤, 달빛이 뜰 때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마주했다. 그는 처음과 달리 조금씩 변했다. 차가운 말투가 누그러졌고, 눈빛엔 미묘한 감정이 생겼다.

“왜 나를 매일 찾아오는 거죠?”

“그건…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요.”

인간과 그림자, 시간과 감정. 서로 다른 세계의 존재가 달빛 아래에서 조금씩 닮아갔다. 하지만 계약의 끝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말했다.

“내가 시간을 버릴게요. 당신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달이 가장 환하게 빛나던 그 밤, 두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리고 세상에서 둘은 함께 사라졌다. 누군가는 그들을 ‘저주받은 연인’이라 불렀지만, 그들에겐 그게 유일한 자유였다.